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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칼럼] 코끼리와 벼룩
글번호: 324
작성자: redplus
작성일: 2002/08/19 오후 5:43:00
조회수: 4671
코끼리와 벼룩

글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겸 한국리더십센터 전문위원)

  "평생의 시간을 미리 회사에다 팔아 넘기고 그 대신 평생 고용을 보장받는 그런 형태의 직장 문화는 앞으로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포트폴리오 생활의 큰 축복이다. 놀 것이냐 말 것이냐를 회사 사정이나 동료들의 필요에 맞춰 결정했던 대신 내 맘대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택을 하고, 노

라고 말할 수 있는 강인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성공의 의미를 재규정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인생과 그 목적에 관한 개인의 가치와 신념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치관의 문제이다.

    포트폴리오 생활을 위해서는 자신을 판매하고 자신의 값어치를 결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학습과 능력 개발을 조정하고 여러 삶 사이에서 균형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것을 가르쳐주는 학교는 없다. 무슨 일을 하든 품질을 보장하는 것은 최근의 일과 프로젝트 뿐이다. 과거 명성이나 경력은 아무런 보장이 되지 못한다. 포트폴리오 생활자는 자신만을 위해 고용된 사람이다. 이것은 자랑스러운 상황이지만 동시에 대타를 내세우지 못한다는 뜻도 된다. 어떤 게임을 하든 직접 뛰어야 한다. 늘 준비하면서 곧장 게임에 뛰어들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회사 생활에 비한다면 조금 외로운 생활이다. 이들은 늘 여기저기를 뛰어다녀야 한다. 회의 시간이나 날짜에 대해 거의 통제권이 없다. 이들은 사무실이나 비서를 두지 않는다. 권력을 내주고 대신 영향력을 구입한 것이다. 이런 일거리는 자부심은 주지만 야망은 별로 부추기지 않는다." 찰스 핸디가 쓴 코끼리와 벼룩에 나오는 말이다. 코끼리는 대기업을, 벼룩은 프리에이전트 (포트폴리오 생활자)를 의미한다.

    정말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일이 있으면 당연히 앉아 있어야 하고, 일이 없거나 끝냈더라도 퇴근시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그 생활을 하면서 늘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내 청춘과 열정을 회사에 통째로 바치고 있는 만큼 회사는 내 인생을 보장해야 한다. 하루 중 황금 시간 대는 모두 회사에서 보내고 있으니 회사도 나를 위해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근무를 할 때가 절정기였다. 각종 회의에 쫓아다니고, 수많은 근로자에게 치이고, 상사 눈치를 봐야 하고, 상갓집에 칠순 잔치에 그야말로 일주일 전체가 근무시간이었다. 월급은 적은데 품질, 생산, 안전, 효율, 기백명이 넘는 직원의 모든 것 등 엄청난 양의 책임이 뒤따랐다. 모든 시간을 회사에 바치고, 우선 순위 넘버원은 언제나 회사 일이었다. 내 인생은 회사고, 내 인생은 회사에 달려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도 어디 회사의 어느 부서에 소속된 누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익숙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의존적이었다. 내가 불행한 것도, 내가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못 갖는 것도, 돈이 없어 사고 싶은 것을 못 사는 것도, 심지어 운동을 못해 몸무게가 부는 것도 모두 회사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머리 속은 온통 회사, 회사와 관련된 사람, 회사와 관련된 업무로 가득 찼다. 일과 후에도 동료 직원의 상갓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도 동료들과 등산을 갔다. 내 생활은 곧 회사 생활의 연장선상이고 나 만의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회사에 대한 사랑은 일방적인 짝사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회사를 사랑하는 것처럼 회사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회사라는 것은 대상이 불분명했다. 내 직속 상관이 회사인가, 오너인 회장님이 회사인가, 새로 온 사장님이 회사인가… 이러다 회사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라는 불안감이 때때로 엄습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회사와 연관하여 생각해야 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의존적인 내 삶이 싫었다. 그 때 결심한 것 이 직업적, 경제적, 시간적인 독립이고 대기업을 나온 지 수년 만에 지금 이룬 것은 직업적, 시간적인 독립이다.

   조직과 리더십 관련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며, 그런 컨텐츠를 가지고 기업과 조직을 대상으로 강연과 자문을 하고, 워크숍을 진행하고, CEO를 대상으로 코칭을 하고… 이런 것들이 내가 하는 일이다. 한 회사에 바쳤던 시간과 지혜와 충성을 여러 고객에게 나누어 바치고 있다. 상사와 동료로부터는 자유로워졌지만 고객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자유롭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 기꺼이 구속을 당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 자유롭게 생활을 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부러워한다. 하지만 자유라는 것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늘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예전에 나를 지켜준 기업이라는 보호막은 사라졌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핑계 댈 곳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한 번 찾은 고객이 다시 찾게끔, 나를 갈고 닦아야 한다."

    회사를 위해 오랫동안 사업 계획을 만들던 나는 회사 대신 나 자신을 위한 사업 계획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 니즈에 맞는 컨텐츠를 어떻게 개발하고 상품화할 것인지 고민한다. 회사 사람과 관련업계를 주로 만났지만 지금은 훨씬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선 고객과 고객 관련 프로젝트의 일이다. 주기적으로 만나 자문을 해 주는 회사 관련 사람들, 강의와 워크숍을 의뢰하는 사람들, 번역이나 책을 만드는 일로 만나는 출판사 사람들, 사보를 부탁하는 사람들, 서평 기타 컬럼 건으로 만나는 사람들, 방송국 작가와 피디… 두 번째 그룹은 나 자신의 지적 자극과 컨텐츠 업그레이드를 도와 주는 그룹이다. 내가 강의를 나가는 대학의 학생들, 자문 교수단, 지식 관련 한 몇 개의 인포멀 그룹, 외곽에서 나를 홍보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

   예전에는 공장에 출근을 해서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설비를 점검하고 공장을 돌리는 일을 했는데 요즘은 공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고객을 만나 공장을 돌린다는 생각이 든다. 고객을 만나 즉석에서 생산도 하고 판매도 하고 수주도 받고 마케팅도 하는 셈이다. 그런만큼 몹시 분주하다. 누구도 일찍 일어나라, 약속 시간을 지켜라, 열심히 책을 보라고 잔소리 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 는 새벽마다 일어나고, 많은 책을 읽고, 호기심의 안테나를 세우고 세상을 관찰한다. 나는 프리에이전트다. 나는 코끼리(대기업)을 위해 일하는 벼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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